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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 POWER – 여성 미술가들

2021.7.12

GIRL POWER – 여성 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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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시대의 분위기, 관습적인 문화, 내면의 고통에 맞서 작품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성별을 떠나 사람으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산업화가 막 시작된 유럽에도, 거친 자연의 기운이 가득한 남아메리카에도, 일제 식민지를 겪는 동양에도 예술가는 있었습니다. 누구나 예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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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1985-2020 GUERRILLA GIRLS


1989년 뉴욕, 기괴한 고릴라 가면을 쓴 나체의 여성 그림이 시내 곳곳에 등장합니다. 지하철 전광판, 시내버스 광고판을 가득 채우더니 급기야는 정통있는 미국의 대표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앞 광고판에 붙게 됩니다.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Museum?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만 하는가?

이제까지 미술계의 분위기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카피라이트가 누드화와 함께 시선을 끌었습니다. 뉴욕 도시 전체에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것은 게릴라 걸스. 고릴라 가면을 쓴 익명의 활동가로 정치나 대중문화의 부패, 성별과 민족적 편견을 다루는 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을 겨냥한 당시의 캠페인은 미술관에 걸린 여성 누드화에 비해 여성 미술가의 작품 수가 현저히 낮음을 꼬집었습니다. 현대 예술 섹션에 걸린 여성 미술가 작품은 5%도 안되지만 누드화의 85%는 여성이라는 문장은 많은 생각을 남깁니다.



COPYRIGHT © 1985-2020 GUERRILLA GIRLS


메트로폴리탄은 200만 점의 소장품을 갖고 있어 세계 5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곳에 여성의 작품이 5%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많은 미술가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꿈을 펼쳐나갔던 여성 미술가들을 소개합니다.



좌: 마네가 그린 베르트 모리조, Édouard Manet, Berthe Morisot With A Bouquet Of Violets
우: 베르트 모리조의 대표작, Berthe Morisot, Woman at Her Toilette, 1875


베르트 모리조는 19세기 인상주의 운동에 참여한 프랑스의 선구적인 화가입니다. 로코코 미술의 대가인 할아버지 밑에서 예술적 분위기를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1868년 에두아르 마네를 만나며 작품 세계가 넓어집니다.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유일한 여성 화가로 참여하고 런던의 신영국 미술 클럽이나 벨기에의 20인회, 벨기에 미술협회 등 여러 미술단체의 전시회에도 참여했습니다. 1892년 파리에서 열린 개인전은 베르트의 화가로서 능력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는 침묵과 친밀, 부드러운 순간에 주목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색채와 유려한 선으로 일상의 정경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았습니다. 주로 여성, 아이들을 그렸는데 이것은 19세기 여성으로 접할 수 있었던 문화적 제한이 반영된 것입니다. 도시 풍경화나 누드화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전원 풍경이나 가정적인 삶의 이미지만을 그렸습니다.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화가였음에도 향유할 수 있었던 문화 영역이 한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그다 파치가 그린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Magda Pach, 1933


유럽에서 다양한 여성 미술가가 활동할 때, 거친 자연의 남아메리카에서도 위대한 화가가 등장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혁명의 열기가 가득한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났습니다. 6세 때 걸린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생겼고, 18세에 겪은 교통사고로 척추, 골반,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살아있는 것이 기적인 몸이 되었습니다. 평생에 걸쳐 지독하게 사랑한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심한 여성편력을 가지다 못해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외도를 저지릅니다. 프리다는 신체와 정신을 관통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사후, 1970년대 말, 미국 4개 도시에서 열린 'Women Artists 1550-1950' 전시를 통해 주목받게 됩니다. 고통의 연속이었던 삶의 욕망을 솔직 담백한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로 표현한 것이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오른 다리를 잘라내고 여러 차례의 척추 수술이 실패하며 누워서 지내야 했지만 삶이 다할 때까지 휠체어에 기대앉아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강렬한 삶의 의지가 담긴 그림은 멕시코의 국보가 되었습니다.



나혜석, 화녕전작약, 1930 중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같은 시기, 식민 지배를 받던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도 위대한 화가가 등장합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 여류 서양화가의 길을 걸은 인물입니다. 한국 최초 동경여자미술 전문학교 입학, 최초 서양화 전공, 최초 여류 화가 개인전 등 많은 활동을 펼치며 진취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참신한 기법으로 여러 전람회에서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첫사랑의 죽음 이후 6년을 끈질기게 구애해 온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하게 되는데 네 가지 결혼 조건을 걸었다고 합니다.

1.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할 것
2.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
3.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함께 살지 않도록 해줄 것
4. 첫사랑 최승구의 묘비에 비석을 세워줄 것

나혜석의 재능을 아꼈던 김우영은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녀는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 나의 그림은 어떤지" 끊임없이 성별과 사회와 그림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나혜석은 김우영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은 아티스트의 세계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지만 여행 중 만난 김우영의 친구, 최린으로 인해 불행이 시작됩니다. 최린과 깊은 관계로 발전하며 이혼 당하게 되고 결국 최린에게도 버림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이혼고백서'를 발표하여 파문을 일으킵니다. 글은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밝히며 남성 이기주의를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 1934년, 8-9월호 '삼천리'에 실린 [이혼고백서] 중

나혜석은 가정뿐만 아니라 연애와 섹슈얼리티에서도 남녀의 불평등이 강요되는 사회,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이중성에 항의했습니다. 근대 사회에서 뛰어난 예술성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펼쳤던 나혜석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해 여러 차례 전시되며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시대의 분위기, 관습적인 문화, 내면의 고통에 맞서 작품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성별을 떠나 사람으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탐구하고 내면의 파동을 연구했던 모든 이들이 예술가입니다. 산업화가 막 시작된 유럽에도, 거친 자연의 기운이 가득한 남아메리카에도, 일제 식민지를 겪는 동양에도 예술가는 있었습니다. 누구나 예술가였습니다.

걸 파워는 결국 성별의 파워가 아니라 개인의 파워입니다. 나이,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억압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내면의 잠재력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의지를 가진 모든 개인이 용기를 내어 앞으로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DITOR 진혜민  DESIGNER 제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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